이석(李錫)
시대 : 조선
생몰년 : 1882-1909(고종19-?)
자 : 사옥(士玉)
활동분야 : 의병
1882(고종 19)∼1909. 한말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옥(士玉). 경상북도 청송출신. 1896년 을미의병이 각처에서 전개되자 의병부대에 입진하였으나 의병부대 해산조치에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그뒤 1906년 을사의병의 일환으로 영천을 중심으로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구성되자 의병장 정용기(鄭鏞基)의 휘하에서 초장(哨長)과 좌령장(左領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 남석문(南錫文)·정순기(鄭純基) 등과 청송·영덕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던 중 남석문이 붙잡혀 처형당하자 중도에서 귀대하였다. 이때 의병장 정용기가 전사하고 정환직(鄭煥直)이 의병장으로 추대되자 중군(中軍)에 임명되었다. 얼마 후 정환직이 청하에서 패전하여 처형당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였다.
한편, 당시 산남의진은 의병장이 공석인 채 이미 구심력을 잃고 소규모의 유격부대로 재편되어갔다. 이에 소수의 부하만을 인솔하고 장기와 청하 등지를 진격,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이어서 울산으로 진군하던 중 일본군의 복병에게 크게 패하였다.
그뒤 휘하의 의병을 해산하고 귀향하여 삼유산(三踰山) 아래 도평촌(道坪村)에 은거하던 중 1909년 7월에 붙잡혔다. 3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탈옥하였으나 다시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史(金承學, 獨立文化社, 1965)
朝鮮獨立運動 1(金正明編, 原書房, 1967)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독립운동사자료집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獨立有功者功勳錄 1(國家報勳處, 1986)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朴成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