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유래/경주이씨인물

임해군 운와공 묘표음기 十八世(1313 - 1340)

在錫 2011. 8. 31. 13:30

고려국 봉상대부 전리총랑 보문각 직제학 지제교 이군 묘표(高麗國 奉常大夫 典理摠郞 寶文閣 直提學 知製敎 李君墓表)

유원(有元) 지원(지元) 6년(1340 충혜1), 경진 10월 초 하루에 왕부 단사관(王府斷事官) 검의평리(僉議平理) 이공(李公)이,그의 문생 정동원외랑(征東員外郞), 이곡(李穀)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일찍부터 우리집 아이 달존(達尊)과 더불어 놀아서 그 사람됨을 잘 알 터이니 그 묘에 음기를 하나 지어주게』라고 하였다.

또『누가 사람치고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만은 사랑함이 지나쳤으므로 슬퍼하는 것도 도를 지나쳤네 』라고 하였다.

 

아! 나, 곡(穀)이 어찌 차마 사양할 수 있겠는가. 군(君)의 이름은 달존(達尊)이고 자(字)는 천각(天覺)이다. 세계(世系)는 경주이씨다.

고(故) 임해군(臨海君) 이공(李公) 진(瑱)의 손자(孫子)이며 현재 생존하고 있는 영가군(永嘉君) 권공(權公) 부(溥)의 외손(外孫)이다.

그리고 또 상당군(上黨君) 백공(白公) 이정(頤正)서랑(사위)이다. 안밖으로 다, 세상에 이름 있는 문벌이다. 무릇 도덕과 문장을 치려면 반듯이 위의 세 정승 댁을 친다.

군(君)이 소 시절부터 비단옷을 입는 버릇이 없고, 효도하고 우애하며 공손하고 검소하였다. 십일세(十一歲)에 가문의 공으로 별장(別將)을 제수받고 십팔세(十八歲)에 문사(文詞)가 이미 교묘하여 을과에 급제 하였다.

사보(思補)를 거쳐서 헌납(獻納)으로 승진 하였다. 이어 감찰장령(監察掌令)과 전의부령(典儀副令)으로 옮겼다.

기묘년(1339) 겨울에 존공(尊公 : 아버지)이 국난으로 왕을 수행하여 북쪽으로 올라갔다. 군(君)도 따랐다. 모두 위험하게 생각 하였다. 군이 나는 군부(君父)가 있다는것을 알 따름이다 라고 하여 필마로 갔다.

이듬해에 충정왕(忠定王)이 정권을 회복하고 정사에 복귀할 즈음에, 전리총랑(典理摠郞)으로 승진하고, 사보(思補)로 전임 되었다. 이상은 다 겸직이다. 육(六)월에 동쪽으로 돌아오다 병을얻어 가마로 압록강을 건너다, 이십구(二十九)일 신해에 도중에서 굿겨서 장림역(長林驛)에다 빈소를 차렸다.

갑자에 관을 맞이하고 시월 모(某) 갑자에 모(某) 언덕에 안장 하였다. 향년(享年)이 이십팔(二十八)이다. 자녀는 다섯 남매를 두었는데, 장남 덕림(德林)은 나이 열한살이고 차남 수림(壽林)은 아홉살이고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아! 군이 처음에 그의 태부인(太夫人) 상(喪)을 당했을때, 너무 슬퍼하여 몸이 훼손되어 거의 멸성(滅性)할 정도여서, 종족(宗族)이 그 효성을 칭찬 하였다. 이미 공부를 해서 글을 잘하고 이미 일에 나가서는 일을 잘 정리하였다. 사람들이 그 가정을 위하여 사업을 하리라고 믿었는데 하늘이 만약 이러한 사람을 독실히 낳아 이 세상에 함이 있어야 할 터인데 어찌 수명을 더 주지 않고 이에 이르렀단 말인가. 아! 슬픈 일이다.

한산 이곡 찬(韓山 李穀 撰)


元文

高麗國奉常大夫,典理摠郞,寶文閣直提學,知製敎李君墓表。
有元至元六年庚辰十月朔。王府斷事官僉議評理李公。命其門生征東行省員外郞李穀曰。子早與吾兒達尊游。
知其爲人。宜爲表其墓。又曰。人孰不愛其子。而吾之愛甚。故其亡也哀之過。嗚呼。穀其尙忍爲之辭乎。
君諱達尊。字天覺。系出雞林李氏。故臨海君李公瑱之孫。今永嘉君權公溥之外孫。上黨君白公頤正之壻。
內外皆奕世門閥。凡稱道德文章。必先三相家。君少無紈綺習。孝友恭儉。生十一。以門功拜別將。十八。
工文詞。登乙科第。由思補陞獻納。尋遷監察掌令典儀副令。己卯之冬。尊公以國亂隨王北上。時人心危疑。
君曰。吾知有君父而已。匹馬往從之。明年。事定王復政。轉典理摠郞。思補以上。皆兼館職。六月。
東還得疾。輿過鴨淥水。二十九日辛亥。歿于道。旅殯長林驛。八月某甲子。使迎柩。十月某甲子。葬某原。
年二十八。子男女五。長曰德林。年十一。次曰壽林。九歲。餘皆幼。嗚呼。始君居太夫人憂。哀毀幾滅性。
宗族稱其孝。旣學而文。旣事而幹。人知其能業其家。天若篤生斯人而有爲於斯世也。胡不假年而至於斯。

嗚呼。


참고내용

- 지원(至元):원나라 순종(順宗)의 두 번째 연호)
- 문생(文生):과거 시험관에 대한 합격한 과생들의 칭호. 그밖에 제자라는 뜻도 있다.
- 정동원외랑(征東員外郞) : 원이 우리나라를 감시 및 간섭하던 관아의 정육품(正六品)벼슬. 책임자는 원나라 사람임.
- 이곡(李穀:1298-1351)

한산이씨(韓山李氏)로,초명은 운백(芸百)이고 자(字)는 중부(仲父)이며 호(號)는 가정(稼亭)이다. 자성(自成)의 아들이고 목은 색(牧隱 穡)의 아버지다.

익재 이재현(益齋 李齊賢)의 문인(文人)이고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서사(胥史)로서 문과에 급제(1320)하고 1333년엔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제 2갑(甲)으로도 급제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 검열(檢閱)을 거쳐 휘정원(徽政院) 관구(管勾)를 역임하고 정동행 중서성 좌우사 원외랑(征東行 中書省 左右司 員外郞)이 되어 원제(元帝)에게 건의하여 고려에서의 처녀(妻女)징발을 중지케 했다.

그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그쳐 도검의찬성사(都檢議贊成事)에 이르러 한산군(韓山君)에 봉(封)해 졌다.

옮긴이 : 야촌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