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대무신왕(大武神王) 재위 18∼44

2011. 8. 16. 20:07▣ 시대별 한국왕/시대─고구려


일명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 이름은 무휼(無恤)이다. 어머니는 다물국왕(多勿國王) 송양(松讓)의 딸이다.

 

14년(유리왕 33) 11세 때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15세에 즉위하였는데, 27년 동안 재위하면서 고구려의 성장에 큰 공헌을 하였다. 동부여왕(東扶餘王) 대소(帶素)와 싸워 그를 죽이고, 그 땅을 병합하였으며, 26년 압록강 상류 방면의 개마국(蓋馬國)을 정복하고, 이어 이웃의 구다왕국(句茶王國)의 항복을 받았다.

 

28년 한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가 침략해왔으나 송옥구(松屋句)와 을두지(乙豆智)의 지략으로 물리쳤고, 32년 호동왕자(好童王子)의 활약으로 낙랑을 공격하는 등 성장된 국력을 과시하면서 국토를 크게 넓혔다. 그리하여 이해에는 후한(後漢) 광무제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국제적으로도 그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을두지·송옥구 등 많은 인물을 등용하고, 처음으로 좌·우보체제(左右輔體制)를 설치, 확립시켜 이들로 하여금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한 문제를 다루게 함으로써 고구려의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 형성을 위한 첫 단계를 만들었다.

 

44년에 사망하였으며, 대수촌원(大獸村原)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의 그의 본기(本紀)에는 〈적오설화 赤烏說話〉· 〈부정설화 負鼎說話〉· 〈초인설화 草人說話〉· 〈이어설화 鯉魚說話〉·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설화〉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설화들은 고구려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志
後漢書
高句麗 初期의 左·右輔와 國相(李鍾旭, 全海宗博士 華甲紀念 史學論叢,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