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인물/역사빛낸명장(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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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지청천(池靑天)
지도자로서의 길 / 항일 투쟁 / 해방, 그 후 ▶ 지도자로서의 길 한말 무관학교(武官學校)에 입교, 2학년 때 1, 2년생 40여명과 함께 정부유학생으로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東京陸軍中央幼年學校)에 들어갔다. 이때는 본명인 지대형을 사용하였다. 유년학교는 뒤에 일본사관학교 예과가 된 3년제이며, 다시 본과 2년이 있는데, 유학도중 한일합병이 되어 본과에는 일반학생으로 편입하는 곤경을 겪었다. 제26기생으로 1913년 졸업, 중위가 되면서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일무력항쟁을 지도하기 위해 일본의 병서와 군용지도를 가지고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찾았다.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하고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만주군정부(滿洲軍政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간부가 되었다. ▶ 항일 투쟁 같은해 1..
2011.08.15 -
[현대] 김좌진(金佐鎭)
성 품 / 애국계몽운동의 선구자 / 독립운동 / 신민부 창설 ▶ 성 품 충청남도 홍성출신이며, 아버지는 형규(衡奎)이다.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민하고 공부보다는 전쟁놀이와 말타기를 좋아하였다. 15세 때인 1904년에는 대대로 내려오던 노복 30여명을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종문서를 불에 태우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 애국계몽운동의 선구자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07년 향리로 돌아와서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우고,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운영에 충당하게 하고 90여칸의 자기집을 학교교사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홍성에 대한협회 지부와 기호흥학회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09년 한성신보 이..
2011.08.15 -
[조선] 최윤덕(崔潤德)
출생과 일화 / 전공과 관력 ▶ 출생과 일화 지중추부사 운해(雲海)의 아들이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국경의 수비에 나가 있어 한마을에 사는 양수척(楊水尺)에 의하여 양육되었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으며, 어느날 소에게 꼴을 먹이러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화살 하나로 쏘아죽였다. 그는 성품이 자애롭고 근검하여서 공무의 여가를 이용하여 묵은 땅에 농사를 지었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남편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여인의 호소를 듣고 그 호랑이를 잡아서 배를 갈라 남편의 뼈를 찾아 장사를 지내게 해 준 일도 있다. ▶ 전공과 관력 음관(蔭官)으로 기용되어 아버지를 따라 여러 번 전공을 세우고 부사직이 되었다. 1402년(태종 2)에 낭장이 되고, 곧 호군을 거쳐 이듬해 대호군이 되었..
2011.08.15 -
[조선] 전봉준(全琫準)
집안내력 / 동학에 입교하다 / 탐관오리 조병갑 / 고부민란 / 동학농민항쟁 / 외세의 간섭 ▶집안내력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의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宮洞面陽橋里: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부군 향교의 장의(掌議)를 지낸 창혁(彰爀 혹은 承)의 아들이다. 아버지 창혁은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달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뒷날 그가 사회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집안이 가난하여 안정된 생업이 없이 약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방술(方術)을 배웠으며, 항상 말하기를 ‘크게 되지 않으면 차라리 ..
2011.08.15 -
[조선] 이순신(李舜臣)
삼황오제를 딴 이름 / 벼슬에 오름 / 임진왜란 / 옥포대첩과 노량대첩 / 당항포대첩과 한산도대첩 / 부산포대첩 / 백의종군 / 명량대첩 / 죽은 뒤 ▶삼황오제를 딴 이름 아버지는 정(貞)이며,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로 수림(守琳)의 딸이다. 서울 건천동(乾川洞:지금의 중구 인현동 부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시골 본가는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백암리이나 어린시절의 대부분은 생가인 서울 건천동에서 자란 듯하다. 그의 가계는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 로부터 내려오는 문반(文班)의 가문으로, 이순신은 그의 12대손이 된다. 그의 가문은 4대 때에 조선왕조로 넘어오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5대조인 변(邊)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와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증조부 거는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
2011.08.15 -
[조선] 양헌수(梁憲洙)
내 력 / 문무를 겸비한 무인정신 ▶ 내 력 부사정 종임(鍾任)의 아들이며,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무예를 익혔다.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철종 때에는 참상관(參上官)에 올랐다. ▶ 문무를 겸비한 무인정신 1865년(고종 2) 제주목사로서 전판관 백기호(白基虎)의 탐학을 징치하도록 하여 제주도민의 칭송을 받았고, 이해 가을 극심한 태풍의 피해를 복구하는 한편, 진휼을 요청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한해를 더 잉임(仍任)하였다. 1866년 어영청의 천총(千摠)으로 준천사(濬川司)의 도청(都廳)을 겸하다가 병인양요를 당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의 수성장(守城將)이 되었다. 순무중군(巡撫中軍) 이용희(李容熙)의 명령에 따라 별군관(別軍官) 이현규(李鉉奎)와 함께 17명의 초관(哨..
201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