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인물/역사빛낸명장(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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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종서(金宗瑞)
육진개척 / 면 모 / 실록편찬과 수난 ▶ 육진개척 도총제(都摠制) 추(錘)의 아들로,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여 1415년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을 지냈고, 1418년(세종 즉위년) 11월 감찰로서 강원도의 답험손실(踏驗損實)로 원성이 크자 조정에서는 그에게 다시 조사하게 하였다. 1419년 3월 행대감찰(行臺監察)로서 충청도에 파견되어 진휼상황을 조사하였고, 같은 해 10월에 사간원우정언이 되었다. 1420년 윤정월에 광주판관(廣州判官)이 되었고, 봉상판관(奉常判官)으로 있으면서 의주·삭주도(義州朔州道)의 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으로 파견되었으며, 1426년 4월에는 이조정랑으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침입한 왜인의 포획상황을 조사, 보고하였다. 1427년에는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황해도경차관으..
2011.08.15 -
[조선] 권 율 (權 慄)
과거급제 / 임진왜란 발발 / 독성산성 전투 / 행주산성 전투 / 행주산성 전투 그 후 ▶ 과거급제 아버지는 영의정 철(轍)이며,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1582년(선조 15) 식 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1591년에 재차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바로 의주목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해직되었다. ▶ 임진왜란 발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바로 임지로 떠났다. 왜병에 의해 수도가 함락된 뒤 전라도순찰사 이광(李洸)과 방어사 곽영(郭嶸)이 4만여명의 군사를 모집할 때 광주목사로서 곽영의 휘하에서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서울의 수복을 위해 함께 북진하였다. 이광이 수원과 용인 경내에 이르러 이곳에 ..
2011.08.15 -
[조선] 곽재우(郭再祐)
은거 생활 / 관직 생활 / 빛나는 용병술 경상남도 의령출신으로, 황해도관찰사 월(越)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외손서이며, 김우옹(金宇 )과는 동서 사이이다.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별시(別試)의 정시(庭試) 2등으로 뽑혔으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려서 발표한 지 수일 만에 전방(全榜)을 파하여 무효가 되었다. 그뒤, 과거에 나아갈 뜻을 포기하고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인 기강(岐江)위 돈지(遯池)에 강사(江舍)를 짓고 평생을 은거할 결심이었다. ▶ 관직생활 그러나 그곳에 머문 지 3년 만인 1592년 4월 14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관군이 대패하자, 같은달 22일에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대신해서 싸웠다. 그 공으로 같은해 7월에 유곡찰방(幽谷察訪)을 시작으로 바로 형조..
2011.08.15 -
[고려] 최 영 (崔 瑩)
공민왕대의 공적 / 우왕대의 공적 / 요동정벌의 실패와 몰락 ▶ 공민왕대의 공적 평장사(平章事) 유청(惟淸)의 5세손, 사헌규정(司憲糾正) 원직(元直)의 아들이 다. 풍채가 괴걸하고 힘이 뛰어났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 휘하에서 왜구를 자주 토벌하여 그 공으로 우달치(于達赤:司門人)가 되었다. 1352년(공민왕 1)에 안우(安祐)·최원(崔源) 등과 함께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하여 호군(護軍)이 되었고, 1354년에 대호군이 되었다. 이때 원나라에서 고려에 원병을 청하자 유탁(柳濯)·염제신(廉悌臣) 등 40여명의 장수와 함께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원나라에 갔는데, 그때 원나라의 승상(丞相) 탈탈(脫脫) 등을 좇아 중국 고우(高郵) 등지에서 싸우고 이듬해에는 회안로(淮安路)에서 ..
2011.08.15 -
[고려] 윤 관 (尹 瓘)
가계와 관직 / 여진정벌 / 9성 설치와 반환 ▶ 가계와 관직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韓功臣) 신달(莘達)의 고손이며, 검교소부소감 (檢校小府少監)을 지낸 집형(執衡)의 아들이다. 문종 때에 등과, 습유(拾遺)·보궐(補闕)을 지냈고, 1087년(선종 4)에는 합문지후(閤門祗候)로서 출추사(出推使)가 되어 광주(廣州)·충주·청주를 시찰하였다. 1095년 숙종이 즉위하자 좌사낭중(左司郎中)으로 형부시랑 임의(任懿)와 함께 요나라에 파견되어 숙종의 즉위를 알렸다. 1098년(숙종 3) 동궁시학사(東宮侍學士)로서 조규(趙珪)와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숙종의 즉위를 통고하였다. 1099년에 우간의대부 한림시강학사(右諫議大夫翰林侍講學士)가 되었으나 당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이던 임의와 친척이어서 간원(諫院)..
2011.08.15 -
[고려] 김통정(金通精)
김통정장군 전설..수산리 횃부리물(장수물,용천수) 1270년(원종 11) 배중손(裵仲孫)이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할 때 장수로 참가하였다. 진도를 거점으로 남해안 일대에서 한때 세력을 떨치던 삼별초는 1271년 5월 김방경(金方慶), 홍다구(洪茶丘), 몽고장군 흔도등이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진도가 함락되자,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탐라(耽羅: 지금의 제주도)에 들어가 성을 쌓고 재기를 꾀하여, 한때 남해안 지방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또한, 홍다구가 조카인 낭장 김찬(金贊)과 이소(李邵) 등을 보내어 회유하였으나 듣지 않고, 김찬을 억류하고 나머지는 다 죽이는 등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1273년1273년 4월 160척의 배와 수륙병 1만여명을 이끌고 온 김방경의 정벌군에 ..
201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