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별 한국왕/시대─신라(56)
-
제1대왕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재위bc57∼ad4
신라 박씨(朴氏)의 시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박혁거세라고 지칭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건국설화가 있다. 서기전 69년 3월 1일 당시 사로6촌(斯盧六村)의 촌장(村長)들이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서 임금을 모시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할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때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근처에 신기한 빛이 하늘에서 땅에 닿도록 비추고 있고, 흰말〔白馬〕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가보니 큰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하늘로 날아가고, 알을 깨고서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 이 아이가 박혁거세이다. 알의 크기가 박〔瓠〕과 ..
2023.04.17 -
제2대왕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재위 4∼24
성은 박씨. 혁거세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알영부인(閼英夫人)이고, 비는 운제부인(雲帝夫人) 또는 아루부인(阿婁夫人)이다. 누이동생으로 아로(阿老)가 있다. 차차웅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왕은 남해왕 뿐이며 《삼국유사》에는 거서간(居西干)과 동격의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차차웅을 자충(慈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무(巫)를 의미하는 신라 방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남해왕 때는 정치 수장적 성격보다는 제사장적 기능이 강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서기 6년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우고 8년 탈해가 어질다 하여 맏딸로 아내를 삼게 하였으며, 또 대보(大輔)의 벼슬을 주어 나라의 일을 맡겼다. 14년 왜(倭)와 낙랑(樂浪)의 침입을 막았으며, 재위 21년에 죽어 사릉원(蛇陵園)에 장사지냈..
2011.08.17 -
제3대왕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재위 24∼57
성은 박씨(朴氏). 노례이사금(弩禮尼師今)이라고도 한다. 남해차차웅의 태자이며, 어머니는 운제부인(雲帝夫人)이다. 비(妃)의 이름은 알 수 없고,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의 딸 박씨,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 또는 사요왕(辭要王)의 딸이라는 세가지 설이 있으나, 일지갈문왕의 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사금이라는 왕호는 이질금(尼叱今), 치질금(齒叱今)이라고도 쓰는데, ‘잇금〔齒理〕’을 의미하는 신라 방언이라는 전통적 해석이 있으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다. 사회적으로 이사금시대 왕의 성격은 부족연맹장(部族聯盟長)이라는 설이 있으나, 어떻든 종래의 거서간(居西干)시대보다는 문물제도면에서 향상된 시대였음은 인정할 수 있다. 28년에 〈도솔가 兜率歌〉를 지었고, 32년에 6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이들에..
2011.08.17 -
제4대왕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재위 57∼80
성은 석씨(昔氏). 토해(吐解)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 용성국(龍城國)의 함달파왕(含達婆王), 혹은 완하국(琓夏國)의 함달왕(含達王) 등이라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 어머니는 여국왕(女國王)의 딸 또는 적녀국왕(積女國王)의 딸이라고 한다. 왕비는 남해차차웅의 딸 아효(阿孝·阿尼, 또는 남해차차웅의 누이동생 阿老)부인이다. 부왕(父王)이 비(妃)를 맞아 임신 7년 만에 큰 알〔卵〕을 낳자, 왕은 좋지 못한 일이라 하여 버리게 하였다. 이에 보물과 함께 비단에 싸서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보냈다. 궤짝에 실린 탈해는 금관가야를 거쳐 계림(鷄林)동쪽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 이때 한 노파에 의하여 건져지고 길러졌다. 그리하여 고기잡이로써 생업을 하며 양모(養母)를 공양하였다. 그러..
2011.08.17 -
제5대왕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
성은 박씨. 유리이사금의 둘째아들로 태자 일성(逸聖)보다 인물이 뛰어나 즉위하였다고도 하고, 유리이사금의 아우인 내로(奈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사요왕(辭要王)의 딸이고 왕비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 혹은 史肖夫人)이다. 비계(妃系)가 김씨 한기부(漢#기39部)의 유력자임은 파사이사금이 유찬(楡飡)의 못으로 사냥갔을 때 이찬 허루가 딸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으며, 이어 허루는 주다(酒多:나중의 角干)가 되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파사이사금이 유리이사금의 직계라면 탈해이사금 이후 왕위를 계승한 것이 문제가 없으나, 그가 내로의 아들일 경우 월성(月城)에 기반을 둔 석씨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즉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87년에 가소성(加召城), 마두성(馬頭城)..
2011.08.17 -
제6대왕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재위 112∼134
지미(祇味) 또는 지마(祇磨)라고도 한다.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고, 어머니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비는 갈문왕 마제(摩帝)의 딸 애례부인 김씨(愛禮夫人金氏)이다. 아버지인 파사이사금이 유찬(楡飡)의 못으로 사냥갔다가 돌아오면서 한지부(漢祇部)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마제 이찬(伊飡)의 처가 딸을 데리고 나오자 태자 지마가 기뻐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때 혼담이 오간 것을 알 수 있다. 115년·116년에는 친히 병력을 이끌고 황산하(黃山河:낙동강 하류)를 건너 가야를 침공하였다. 125년 말갈군이 대령책(大嶺柵:대관령)으로 쳐들어 왔으나 백제의 원병이 물리쳤다. 《삼국유사》에는 음질국(音質國:安康) 과 압량국(押梁國:지금의 慶山)을 멸망..
201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