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별 한국왕/시대─신라(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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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왕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재위 134∼154
성은 박씨.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유리이사금, 일지갈문왕, 노례이사금의 형, 지마이사금이라는 네가지 설이 있지만 모두 타당성이 없다. 다만 148년에 박아도(朴阿道)를 갈문왕으로 봉한 사실로 미루어 아도갈문왕이 유리이사금의 아들이며 일성이사금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어머니는 이간생(伊刊生)부인이다. 비(妃)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혹은 지마이사금의 딸이라고도 한다. 138년 금성(金城)에 국가중대사를 회의하는 장소인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하였으며, 여러 차례 말갈의 침입을 받고 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기도 하였다. 144년에는 모든 주군(州郡)이 제방(堤防)을 수축하고 전야(田野)를 넓게 개간하도록 명하였으며, 민간에서는 금은주옥(金銀珠玉)의 사용을 금하였다. 146년 압독(押督:지금의 경..
2011.08.17 -
제8대왕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재위 154∼184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일성이사금이고, 어머니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로 박씨(朴氏)이다. 왕비는 지마이사금의 딸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로 8촌 사이의 족내혼이었다. 이와같은 족내혼은 박씨왕족의 힘을 규합하려는 세력연합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56년과 158년에는 계립령(鷄立嶺:지금의 문경새재 동쪽고개)과 죽령(竹嶺:풍기 북쪽고개)을 각각 개통하여 소백산맥 이북까지 세력을 뻗쳤다. 167년에는 군사 2만명과 8, 000명의 기병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서북쪽으로의 영토개척을 이루었다. 이러한 서북지역에 대한 영토개척을 석씨(昔氏)세력의 남하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는 미추이사금의 아버지인 구도(九道) 가 파진찬(波珍飡)이 된 사실을 친석씨계(親昔氏系)의 부상으로 보는 견해에..
2011.08.17 -
제9대왕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재위 184∼196
발휘이사금(發暉尼師今)이라고도 한다. 성은 석(昔)씨. 부계(父系)는 탈해왕의 아들인 구추각간(仇鄒角干)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 연대상으로 탈해가 죽은 지 104년 만에 즉위한 것이므로 세대간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따라서 이것은 탈해 이후 석씨세력이 쇠퇴하여 그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때문이거나, 벌휴계(伐休系)가 탈해의 후손이라고 억지로 끌어다 붙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벌휴가 홍수·가뭄 및 그해의 풍흉을 미리 알았고 사람의 사정(邪正)을 알아맞혀 성인(聖人)이라 불린 데에서 시조적 성격이 농후하며, 《삼국사기》 벌휴이사금 즉위조 이외에 구추에 관한 기록이 없음에서도 짐작이 간다. 어머니는 김씨(金氏)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이다. 벌휴가 즉위한 것은 아달라이사금이 죽고 아들이 없으므..
2011.08.17 -
제10대왕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재위 196∼230
성은 석씨(昔氏). 벌휴이사금의 태자인 골정(骨正)과 둘째아들 이매(伊買)가 일찍 죽고 골정의 아들 조분(助賁)도 아직 어리므로, 이매의 아들 내해가 왕이 되었다.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며 비는 조분왕의 누이 석씨로서, 사촌간에 근친결혼을 하였다. 자녀로는 태자 우로(于老)와 병마사(兵馬事)를 관장하였던 이벌찬 이음(利音)이 있었다. 그 밖에 조분왕의 비가 된 딸 아이혜(阿爾兮)가 있다. 재위기간 동안 백제와의 전투가 빈번하였는데, 214년에 요차성(腰車城)에 백제군이 쳐들어오자 반격하여 백제의 사현성(沙峴城)을 함락시켰다. 그뒤 백제가 장산성(獐山城:지금의 慶山)을 침입하였으나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격퇴하였다. 또, 222년에도 백제가 우두주(牛頭州: 지금의 春川)를 침입하였다고 한다. 그..
2011.08.17 -
제11대왕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 재위 230∼247
성은 석씨(昔氏). 제귀(諸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제분(諸賁)의 잘못일 것이다. 벌휴이사금의 손자로, 골정갈문왕(骨正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딸 옥모부인 김씨(玉帽夫人金氏)이고, 비는 내해이사금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 내해이사금이 죽을 때 사위인 조분에게 왕위를 잇도록 유언하였다고 하지만, 조분은 이미 벌휴의 대손(大孫)이었고 개인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도 왕위계승의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며, 왕비계(王妃系) 김씨세력의 영향력도 있었을 것이다. 즉위 후 영토확장에 주력하여 231년 7월에 감문국(甘文國:경상북도 금릉군 개령면)을 정벌하고, 236년 2월에는 골벌국(骨伐國: 경상북도 영천)을 병합하여 각각 군(郡)으로 삼았다. 232년과 233년에는 금성(金城)과..
2011.08.17 -
제12대왕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재위 247∼261
일명 이해(理解), 점해(#참29解)라고도 한다. 조분이사금의 동모제(同母弟)로, 아버지는 골정(骨正)이고, 어머니는 옥모부인(玉帽夫人)이다. 즉위년(247)에 아버지 골정을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에 봉하였다. 따라서, 점해이사금의 즉위를 형제상속으로 보기도 하고, 골정계(骨正系)의 독립이라는 점에서 가계내의 계승으로 보기도 한다. 248년 고구려와 화의를 맺었고, 255년 백제가 봉산성(烽山城:지금의 榮州?)을 공격해왔으나 이를 빼앗기지 않았다. 한편, 영토의 확장에 노력하여, 달벌성(達伐城: 지금의 大邱)을 쌓았으며 사벌국(沙伐國:지금의 尙州)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이때에는 사로국(斯盧國)이 진한의 전지역을 통일하였다. 261년 12월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참고문헌 :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
201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