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별 한국왕/시대─신라(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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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왕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재위 417∼458
성은 김씨. 아버지는 내물마립간이고, 어머니는 미추이사금의 딸인 보반부인(保反夫人)이며, 비는 실성이사금의 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최초로 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마립간이 실제로는 내물왕 때 이미 사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때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 것은 종래의 왕호인 이사금(尼師今)이 마립간과 더불어 내물과 실성의 양대에 걸쳐 혼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92년에 내물마립간이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었는데, 401년에 귀국한 실성은 내물마립간에 이어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실성이사금은 즉위 후에 자신이 외국에 볼모로 갔던 것을 원망하여 고구려를 이용, 내물마립간의 아들 눌지를 해침으로써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2011.08.17 -
제20대왕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재위 458∼479
성은 김씨. 눌지마립간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실성이사금의 딸 김씨이고, 왕비는 내물마립간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의 딸 김씨를 461년에 맞아들였다. 눌지마립간대에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함으로써 보다 강화된 왕권을 보여주었다. 당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래의 족제적(族制的)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는 6부(部)를 개편하는 일이 긴요하였는데, 469년에는 왕경(王京)인 경주를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방리명(坊里名)을 확정함으로써 왕경의 족제적 성격을 탈피하고 행정적 성격을 강하게 하였다. 국내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비하여 눌지마립간 때에 체결되었던 백제와의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보다 강화하였다. 이 공수동맹에 입각하여 474년에 고구려 장수왕..
2011.08.17 -
제21대왕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재위 479∼500
일명 비처마립간(毗處麻立干)이라고도 한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자비마립간의 장자로서 어머니는 김씨로 서불한(舒弗邯) 미사흔(未斯欣)의 딸이며, 왕비는 이벌찬(伊伐飡) 내숙(乃宿)의 딸 선혜부인(善兮夫人)이다. 왕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있었으며, 스스로 겸손하고 공손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고 한다. 487년에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국내의 기간 도로인 관도(官道)를 수리하였으며, 490년에는 수도인 경주에 처음으로 시사(市肆)를 열어 사방의 물화(物貨)를 유통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자비왕대의 경주의 방리명(坊里名)확정과 아울러 족제적 성격(族制的性格)이 강하게 남아 있는 육부체제(六部體制)를 개편하여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수립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또한, 소지마립간은 비열성(比烈城..
2011.08.17 -
제22대왕 지증왕(智證王) 재위 500∼514
1. 가계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인데 혹은 지도로(智度路),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 내물마립간의 증손이며,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눌지마립간의 딸인 조생부인(鳥生夫人)이며, 왕비는 박씨로 이찬(伊飡) 등흔(登欣)의 딸 연제부인(延帝夫人)이다. 왕은 몸이 건장하였으며 담력이 있었다고 한다. 재종형인 소지마립간이 후계자가 없이 죽자 64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2. 정치개혁과 국명제정 502년에 순장(殉葬)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리고, 주군(州郡)에 명하여 농업을 권장하도록 하였으며, 비로소 우경(牛耕)을 시행하도록 하는 일련의 개혁조처를 단행함으로써 농업생산력증대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이무렵에는 벼농사가..
2011.08.17 -
제23대왕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원종(原宗). 지증왕의 원자이며, 어머니는 연제부인 박씨(延帝夫人朴氏)이고, 왕비는 보도부인 박씨(保刀夫人朴氏)이다. 신장이 7척이나 되고 도량이 넓으며 남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1. 병부 설치 법흥왕은 지증왕 때 일련의 개혁정치를 계승하여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서의 통치체제를 완비하였다. 이같은 점에서 먼저 주목되는 것은 517년에 설치한 중앙관부로서 병부(兵部)의 존재이다. 신라에서 중앙관부로서는 병부가 제일 먼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권을 왕이 직접 장악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즉, 517년에 비로소 설치된 병부는 눌지왕 이후에 등장하여왕의 직속으로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군과 같은 직책..
2011.08.17 -
제24대왕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1. 가계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삼맥종(三麥宗) 혹은 심맥부(深麥夫). 지증왕의 손자로, 법흥왕의 아우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김씨이며, 왕비는 박씨로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니 왕태후 김씨가 섭정하였다. 2. 영토확장 신라의 대외적 발전을 비약적으로 추진시킨 왕이다. 즉위초에는 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551년에 개국(開國)이라고 연호를 바꾸고,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부터 적극적인 대외정복사업을 전개하였다. 550년에 백제와 고구려가 도살성(道薩城:지금의 천안 혹은 증평)과 금현성(金峴城:지금의 전의)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 이듬해 병부령(兵部令)으로 임명된 이사부(異斯夫)로 하여금 두 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하였다. 이렇게 ..
201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