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씨 본관 연원과 집성촌

2011. 8. 12. 16:17▣ 경주이씨유래/경주이씨소개


경주 이씨 본관의 연원(年原)

 

시조휘 알평(始祖諱 謁平) : 기원전 117년 한무제 원수6년 갑자에 하늘로부터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양산 촌장으로서 부족들을 다스리며 혁거세를 양육시켰고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시는데 6부 촌장의 의장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백회의제도를 시행하셔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제도를 구현시키신 선구자였음을 호언 할 수 있다.

 

서기 32년 신라 3대왕인 유리왕인 유리왕 9년에는 진한 6촌을 6부로 개칭할때 지금의 경주시 일원에 해당되는 양산촌의 급량부라 부르고 성씨를 이씨라고 사성하였으니 경주라는 지명을 붙여서 경주 이씨(慶州 李氏)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본관의 염원 : 시조는 신라의 육촌중 알천 양산촌장 알평으로 전하고 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 유리왕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의 성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출신인 거명을 중시조로 하고, 시조의 발상지인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거명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8대파는 평리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호군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석탄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전통의 명문거족인 경주 이씨는 고려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조에 와서도 수많은 공신 학자 명신을 배출하여 명문의 대를 이었다.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중에 상서공파의 백사 항복의 집안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익재공파공린의 집안과 국당파인 매죽헌 완의 집안에서는 훌륭한 상신 및 문형이 배출되어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있다.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及梁部)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岩公) 알평(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 박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취해진 것이다.

 

경주이씨는 스스로 정통파 대종임을 내세우는데, 이씨 중에는 표암공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아 합천 가평 평창 원주 아산 재령 우봉 이씨 등이 이에 속하며, 이 밖에도 우계이씨와 성주이씨의 일부도 알평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분적종까지 합치면 경주이씨가 이씨의 대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이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거명은 신라 때의 인물로 진골(眞骨) 출신이다. 그는 시조 알평의 36세손이며 시조로부터 현재(熙字돌림)까지는 대략 75대(약 2,000년)가 된다.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다.이밖에 지손(支孫) 계통으로 판전공파(判典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석탄공파(石灘公派) 등이 있다.

 

한편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에는 전술한 10본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와 우계이씨는 거명의 윗대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상신 8명,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李恒福)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의세칭 8별(鼈) 집과 완(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 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좌의정 2명,대제학 2명이 나왔고,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集 成 村

분포지명 세대수 분포지명 세대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 51 경남 양주군 웅상면 주남리 50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52 경남 울주군 농소면, 청량면, 상북면 일원 260
강원도 춘성군 신북면 천전리 62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63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68 경남 합천군 대정면 대지리 50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어은리, 향남면 송곡리 68 경북 경산군 자인면, 용성면, 진량면 일원 219
경남 거창군 웅양면 군암리, 남상면 임불리 129 경북 달성군 다사면 서제동 129
경남 김해군, 의창군, 통영군, 남해군 일원 221 경북 문경군 산북면 지내리 60
경남 밀양군 단양면 일원 129 경북 상주군 낙동면 일원 139
경남 산청군 신안면 신기리 52 경북 영덕군 남정면 도천동 70
경남 산청군 차황면 부리, 금서면 매촌리 117 경북 영일군 월성군 일원 882
전남 강진군 대구면 구수리 66 경북 영천군 고경면 오룡동, 화북면 자천동 118
전남 고흥군. 무안군 일원 154 경북 의성군 다인면 신락동 100
전남 나주군 영산포읍 부덕리 55 경북 청도군 매전면 관하동, 청도읍 고수동 1,164
전남 승주군 주암면 요곡리 46 전북 고창군 해리면 기반리 60
전남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70 전북 남원군 대강면 수홍리 53
전남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서호면 태백리 189 전북 완주군 봉동면 성덕리 117
전남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 임회면 고정리 96 전북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 209
전남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 조도면 관사리 100 전북 정읍군 고부면 덕안리 55
전남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금풍리) 85 충남 논산군 성동면 원북리 57
충복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부용면 문곡리 126 충남 보령군 남포면 월전리, 미산면 풍계리 172
평북 박천군 동남면 당상동 89 충남 서산군 남면 달산리 50
평북 삭주군 구곡면 인풍동 60 평북 용천군 동하면 고령동 50
평북 정주군 임포면 원하동 180 함남 단천군 하다면 백자동리 58
함남 이원군 남면 염분리 81 함북 무산군 동면 풍산동 55

 

본관(本貫)유래

같은 성씨(姓氏)라 하더라도 계통(系統)이 달라,그 근본을 명확하게구분하기 어려웠으므로 동족여부(同族與否)를 가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본관(本貫)이다.

 

본관이란 본(本)·관향(貫鄕)또는 관(貫)이라고도 하는데,원래 관(貫)은 돈(錢)을말하는 것으로 돈을 한줄에 꿰어 묶어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이 친족(親族)이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뜻(貫錢見之貫)이며, 여기에 더 나아가 본적(本籍)이란 뜻(本貫鄕籍也)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시조(始祖)나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 혹은 정착세거지(定着世居地)를 근거로 호칭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봉군(封君: 고려때 종 1품, 조선 때 2품이상의 공로자에게 주는 작위)칭호를 따라 정하는 경우, 그리고 성씨와 같이 임금이 공신(功臣)이나 귀화인(歸化人)들에게 특별히 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관(賜貫)이라고 한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崧謙)은 곡성사람이었지만, 고려 태조와 함께 평산(平山)으로 놀러가 그곳이 좋았으므로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 받았으며,하동 쌍계사(雙溪寺)비문(碑文)에 진감선사(眞鑒禪師)의 본관이 황룡사(皇龍寺)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선사가 황룡사 출신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따라서 성씨만이 같다고 해서 전부 같은 혈족이 아니며,본관까지 같아야 같은 혈족(血族)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성씨와 본관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첫째, 동족동본의 동성(同族同本同姓)인데, 근친혼(近親婚)의 불합리성과 윤리적 가치관 때문에 혼인을 절대 금지하고 있으며 최근들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자 점차 해소(解消)시킬 방침이다.

 

둘째, 이족동본의 동성(異族同本同姓)관계인데, 이는 성(姓)과 본(本)이 같지만, 그 근원은 전혀 달라 사실상 혈통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양홍씨(南陽洪氏)는 당홍(唐洪: 당나라로부터 온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함)과 토홍(土洪: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함)으로 구분되어,전혀 공통점이 없이 계통(系統)을 달리하고 있다.

 

셋째, 동족이본의 동성(同族異本同姓)인데 이는 시조도 다르고 본도 다른 경우이다.예를들면 강릉김씨(江陵金氏)와 광주김씨(光州金氏)는시조와 본이 다르지만 같은 김알지(金閼智)계통이며, 고부최씨(古阜崔氏)와 경주최씨(慶州崔氏)도 마찬가지로 시조와 본을 달리하지만 같은 최치원(崔致遠) 계통이다.

 

넷째,이족이본의 동성(異族異本同姓)관계인데,이는 대성(大姓)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한 예로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경주김씨(慶州金氏)등과 같이 같은 성을 쓰면서도 조상이 달라 아무런 계통관계가 없는 것이다.

 

다섯째, 동족의 동본이성(同族同本異姓)인데, 이는 조상과 본을 같이 하면서도 성씨만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예로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의 경우인데, 같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손으로서 성만 달리하므로 혼인이 금지되어 있다.

 

여섯째,이족의 동본이성(異族同本異姓)인데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예를 들어 경주이씨(慶州李氏)와경주김씨(慶州金氏) 경주손씨(慶州孫氏),그리고 안동강씨(安東姜氏)와 안동권씨(安東權氏),안동김씨(安東金氏)등의 경우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성씨에 나타난 본관의 수를 살펴보면,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는 김(金)씨가120본 이(李)씨가116본 박(朴)씨가51본 최(崔)씨가43본 정(鄭)씨가35본 등으로 나타나 있다.

 

1930년 국세조사의 기록에 보면 김(金)씨가85본 이(李)씨가103본 박(朴)씨34본 최(崔)씨34본 정(鄭)씨35본 등으로 되어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족부락(同族部落)이 있었는데, 이들은 문벌(門閥)을 소중히 여기고 자치적으로 상호 협동하여 집안일을 해결해 나가는 특이한 사회조직의 한 형태를 이룬다.

 

수많은 본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파를 지양하고 한 민족의 핏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족동본의식으로 오천년 역사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