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 관련 문화유산

2011. 8. 16. 09:37▣ 경주이씨유래/익재공이제현


귀강서원(龜岡書院)

          

 

   문화재 명 :귀강서원(龜岡書院)
   문화재분류:문화재자료 188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679
   시    대  :조선시대(1686년)
   지 정 일  :1987.05.13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선생을 향사하는 곳

  원래 이 서원(書院)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때에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선생의 영당(影堂)으로 건립(建立)되었던 것을 조선(朝鮮) 숙종(肅宗)12년(1686)에 서원으로 개호(改號)하여 묘우(廟宇)와 동·서재를 중창(重創)하여 향사(享祀)하여 왔으나 고종(高宗) 8년(1871)에 훼철(毁撤)되어 1904년에 다시 중건(重建)하여 복향(復享)해 오고 있다.

 서원(書院)의 배치(配置)는 공간(空間)을 전자형(田字形)으로 구획(區劃)하여 토담을 둘렀는데 좌측(左側)에는 외삼문(外三門)과 강당(講堂), 내삼문(內三門), 사당(祠堂)을 동일축선상(同一軸線上)에 배치(配置)하였고, 우측(右側)에는 고사(庫舍)와 경각(經閣)을 두었다. 경각은 1961년에 중수(重修)되었는데 여기에는
익재영정((益齋影幀)<문화재자료 제90호)과 익재집책판(益齋集冊版)<유형문화재 제233호>이 보존되어 있다.

 

 

익재집책판 (益齋集冊板)

 

문화재명 : 유형문화재 233호 익재집책판 (益齋集冊板)

분     류 : 전적류

수     량 : 147매

지 정 일 : 1987.12.29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679

  이 책판은 고려(高麗) 충선왕(忠宣王) 때로부터 공민왕(恭愍王) 때에 걸쳐 고관(高官) 겸 유학자(儒學者)였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문집목판(文集木板)이다.
『익재집(益齋集)』의 초간본(初刊本)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2년(1363)에, 재간본(再刊本)은 조선(朝鮮) 세종(世宗) 14년(1432)에, 삼간본(三刊本)은 선조(宣祖) 33년(1600)에 각각 간행(刊行)되었으나 현존(現存)하지 않는다.
  이 책판은 사간본(四刊本)으로서 숙종(肅宗) 19년(1693)에 경주(慶州)에서 간행된 것이며 판목의 수효는총 147매이다. 내용은 『익재난고(益齋亂藁)』, 『익재선생문집(益齋先生文集)』, 『연보(年譜)』, 『습유(拾遺)』, 『역옹패설(역翁稗說)』 의 전·후집(前·後集) 등으로 되어 있다.
  문집에 수록(收錄)된 그의 시문(詩文)과 사론(史論), 기타 저술은 당시의 문학(文學), 유학(儒學), 여·원관계사(麗·元關係史)와 고려 말기의 국내외(國內外) 사실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산사(佳山詞)

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164

문화재명

가산사소장익재영정 (佳山祠所藏益齋影幀)

소재주소

전남 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488-2
삼서면 홍정리 487번지 가산마을에 위치한 가산서원은 익재(益齋) 이제현 선생과 백사(白沙)이항복 선생을 봉안하고 있다. 이 서원이 세워진 경유를 살펴보면 1498년(연산군 4년) 익재의 5대 손 재인(在仁)이 장수현감에 재임시 종손(從孫)원이 김종직의 문도로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음을 보고, 익재의 영정을 모시고 낙남하여 현 삼계면 백산촌에 집을 지어 영정을 봉안했다. 그 뒤 1559년 후손 대정(大貞)이 사우를 지어 백산사(白山祠)라 하고 익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기둥이 썩어 사당이 무너질 염려가 잇으므로 1776년 후손 언경(彦慶)이 낭월산 남쪽 기슭, 지금의 가산마을로 옮겨 가산서원이라 이름하고 익재의 영정과 위패를 주벽으로 모시고, 8대 방손인 백사를 배향하였다. 그 후 고종 5년(1868) 대동 훼철되었으나, 영정만은 가산마을 중앙에 지은 영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며 위패는 옛터에 묻어 지금까지 쌍분으로 전해오고 있다. 1957년 본손과 사람들이 옛터에 복원을 시작하여 1960년 3월 24일 예성하고 매년 9월에 향사하고 있다.

 

용암영당 [龍岩影堂]

 

지정번호 : 충남문화재자료

                제141호

지정연도 : 1984년 5월 17일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63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사묘재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사당으로 이제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실재(實齋),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세 때인 1301년(충렬왕 27)에 성균시에 장원하였고 그뒤 예문춘추관, 성균악정, 정당문학 등을 지냈다. 1334년 중국 원(元)나라에 가서 조맹부 등과 고전을 연구하였다. 당대의 명문장가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조맹부의 서체를 도입하여 유행시키는 등 이름을 떨쳤다.

1740년(영조 16) 후손들이 양각산(陽角山) 아래에 사당을 건립하고 삼사당(三思堂)이라 불렀고 사당 앞에는 은행나무를 심어 해마다 제향(祭享)을 올렸다. 그뒤 보령댐 건설로 수몰되어 1998년 양각산 기슭으로 이전하여 중수하였고, 재실(齋室)과 수백년 된 은행나무도 옮겨 놓았다. 규모는 사당 1동, 삼문 1동, 재실 1동이다.

본 용암영당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영원사지보감국사묘응탑비(瑩源寺地寶鑑國師妙應塔碑)

명칭

영원사지보감국사묘응탑비(瑩源寺地寶鑑國師妙應塔碑)

지정번호

유형문화재 13호 수량 1

소유자

밀양시 관리자 밀양시

지정일

1972/2/12 소재지

밀양시 활성동 112번지

보감국사(寶鑑國師)는 고려 말기 충숙왕(忠肅王)때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를 지낸 고승(高僧) 혼구(混丘:1251-1322)의 시호(諡號)인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왕명을 받들어 "조계종자씨산영원사보감국사비명병서(曹溪宗慈氏山瑩源寺寶鑑國寺碑銘竝書)"라는 비문(碑文)을 지었고 이때 세운 비석(碑石)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이나 밀주구지(密州舊誌) 등에도 "비상입기지(碑尙立基地)"라고 적고 있어서 이곳에 있었던 것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밀주승람(密州勝覽)에서도 "영원사재자씨산하고려이제현선승보감 비명비석상재(瑩源寺在慈氏山下高麗李齊賢선僧寶鑑碑銘碑石尙在)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봐서 훼손(毁損)하기 전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 같으나 지금은 유실(遺失)되어 완형의 비석을 대하기는 어렵게 되었고, 지대석(地帶石)도 없이 다만 비석의 일부(一部)인 이수(이首)와 귀부(龜趺)만 남아 있다.
귀부(龜趺)의 중앙에는 비신(碑身)을 박은 장방형(長方形)의 홈이 있고 그 둘레에 구름 문양(雲文)을 새겼으며 등허리에는 귀갑문(龜甲文)이 정연하다. 귀두(龜頭)의 목은 바로 선(直立)자세이고 입을 벌린 괴수(怪獸)의 형태인데 조각은 비교적 섬세하다. 이수(이首)는 원상(圓狀)의 삼각형으로 앞뒤에 두 마리씩의 용(龍)이 여의주(如意珠)를 다투는 형상을 하고 있어 고려시대 탑비(塔碑)의 일반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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