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윤공파 이지대(李之帶) 죽은(竹隱) 두서은행나무 소개

2011. 8. 16. 11:09▣ 경주이씨유래/경주이씨소개

천 년 기 념 물 제 64 호

지정일 1962년 12월 3일


찾아가는 길

국도 35번, 언양에서 경주로 가다보면, 천전리 각석 으로 가는 코너 바로 못미쳐 '차리마을'로 들어가는(좌회전) 암석으로 새겨놓은 이정표를 만난다.이 길을 따라 1Km정도 올라가면 중리마을(다리건너)표시석이 나온다 여기에서 눈을 멀리 바라보면 높고 웅장한 은행나무을 만날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거대한 은행나무는 한성판윤(오늘날 서울시장과 같은 정2품 벼슬)의 직에 있었던 이지대(李之帶) 호는 죽은(竹隱),가 심은 것이다. 고려말의 익재 이제현의 5세손인 그는 조선 태조 때에 경상도수군만호로 있으면서 왜구가 탄 배 한척을 나포한 공으로 태조는 3년(1394) 3월 판교서감사 이문화를 보내어 술과 비단을 하사하였는데 그 원문은 아래와 같다.

慶尙道水軍萬戶李之帶 獲倭一船 命判校書監事李文和 賞官醒綺絹 往賜之帶原節

 

그로부터 그는 누진하여 한성판윤에까지 올랐다. 단종 원년(1452)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등을 죽이고, 안평대군 부자를 강화도에 압치하여 군국의 일을 독단할 때 비분강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구량리에 은거하였다. 이 은행나무는 이 때에 손수 심은 것인데 수령 5백수십년이나 된다. 이 나무는 전해오기를 이씨를 제외한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 훼손하면 해를 입었다고 하며, 구량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었으나 혹시 지변이 일어나서 마을 뒤로 강의 줄기가 바뀌어지면 구량을 떠나라는 죽은 공(이지대)의 당부에 따라 마침 큰 홍수가 나서 냇물의 흐름이 마을 뒤로 바뀌게 되자 경주 이씨들이 경주로 흩어졌다고 전해온다.

이 은행나무의 키는 22m, 가슴높이의 둘레는 3.8m에 이른다. 가지는 동서쪽 31m, 남북쪽 29m 뻗어 있으며, 서쪽 밑부분에서 하나의 큰 가지가 갈라져서 자라고 있다. 땅으로부터 2.5m지점에서는 많이 갈라졌다. 옆으로 퍼진 타원형을 하고 있는 이 나무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하며 마을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왔다. 새순이 돋아날 때는 재잘재잘 참새처럼 노래를 하는 것 같다가 노랗게 잎이 물드는 가을이면 성장을 하고 나선 원숙한 여인처럼 우아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 나무가 그리 편치 않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서인지, 가지끝이 마르고 밑둥치가 썩어들어가는 병을 앓고 있다.


공의 묘는 경주시 명활산의 아배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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