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유래/경주이씨소개(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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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공파 파조(判典公派 派祖)의 벼슬에 대한 고찰(考察)
(判典公)의 휘(諱)는 강으로 중시조(中始祖), 소판공(蘇判公)으로 부터 15세손(世孫) 이요. 열헌공(悅軒公)의 둘째 아우이니 성암(誠庵), 동암(東庵), 송암(松岩)공의 숙부(叔父) 로, 이암(怡菴), 익재(益齋), 국당(菊堂), 부정(副正), 상서(尙書)공 등의 종조부(從祖父)가 되신다. 공(公)의 형수인 김해 김씨는 성암공, 동암공, 송암공, 삼형제 등을 공부시켜 과거에 급제시 킨 현모(賢母)로서 당시 고려는 물론 오늘날 우리 후손들 까지 모르는이 없을만큼 유명한 위 인 할머니로서. 당시 익재공의 아버지 동암과, 국당공의 아버지 송암, 두형제분을 임금이 직 접 치르는 친시(親試)에서 함께 급제 함으로서, 천장 급제라는 대호평을 받으며 금으로 만든 황패를 받았던 일들은 물론 당사자 들의 재주도 있어..
2011.08.16 -
호군공묘갈명역문
◈護軍公墓碣銘譯文(호군공묘갈명역문)◈ 莊光(장광:端宗 世祖의 능호)때에 혹은 의리를 지키어 殉節(순절)하고 혹은 물러와 숨어 살며스스로 지켰으니 처한 바는 비록 다르나 그 의리는 한가지인데 공도 그중에 한사람이다. 공의 휘는 稙(직)이요,자는 敬元(경원)이니 慶州(경주)가 本貫(본관)이다.시조의 휘는 謁平(알평)이니 新羅元勳 太師太傅(신라원훈 태사태부)이다. 中世祖(중세조)의 휘는 居明(거명)이니 벼슬은 蘇判(소판)이요,高麗朝(고려조)에 휘 핵(핵)은 호가 悅幹(열간)이요,尙書左僕射(상서좌복사)이다. 휘 仁挺(인정)을 낳으니 호는 誠菴(성암)이니 文科(문과) 장원으로 門下評理(문하평리)요, 휘 규(규)를 낳으니 翰林學士(한림학사)이다. 新羅(신라)와 高麗(고려)를 지내면서 이름난 公卿(공경)과 큰 보필이..
2011.08.16 -
익재선생 생가터 죽림당 그림(개성시 자남동 소재)
■ 개성의 익재선생 생가터 죽림당 그림. ▲개성의 익재선생 생가터인 죽림당 후원쪽 그림(이곳은 북측에서 보존유적 제1541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개성시 자남동에 소재하는 익재 이제현선생 생가터의 후원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북한의 화가 최경숙 선생이 2007년에 한지에 그린 작품인데, 필자가 소장한 그림입니다. 이곳은 포은 정몽주선생의 생가터인 숭양서원 입구 우측에 소재합니다. 2008년 2월 13일 현지 답사 결과로 보면 이 그림의 아래 산 기슭에 넓은 평지에 생가터가 있고, 앞에는 아름다운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옆으로는 시냇물이 끼고 흐릅니다. 옛 문헌에도 동일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본 그림의 자남산 뒷쪽에는 이규보선생의 생가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 죽림당 구물(竹林堂 舊..
2011.08.16 -
소경공파 소개
소경공파(少卿公派) 소개 소경공파(少卿公派)는 경주이씨 시조(始祖 李謁平)의 후손들로 중시조(遠代孫 中始祖)인 소판공 거명 蘇判公 居明)에서부터 52대손(17세)인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할아버지 익재공파(益齋公派)로 구분되지만 다시 56대손(21세) 손인 소경공(少卿公) 지회(之會) 할아버지 후손들을 일컷으며 크게는 익재공파(益齋公派) 적게는 소경공(少卿公) 지회(之會) 할아버지 이후로부터 소경공파(少卿公派)라고 한다 공의 이름은 지회(之會)이시며 호는 가은(佳隱)으로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인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현손이고 병조판서 선(瑄)의 아들로 출생하여 학업을 갈고 닦아 경전에 통했으며 학행으로 발탁되어 벼슬이 태상(太常) 소경(少卿)에 이르럿고 임금..
2011.08.16 -
서계공파 소계
성 이(李) 본관 경주(慶州) 이름 이득윤(李得胤) 인물설명 1553(명종8) ∼ 1630(인조8)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제현(齊賢)의 후손. 1588년(선조 21) 진사(進士)가 되고 서 기(徐 起)의 문하에서 수학(修學), 역학(易學)에 뛰어나 당시의 대가 박지화(朴枝華)를 찾아가 역학을 토론, 크게 이름을 떨쳤다. 1579년 학행(學行)으로 추천되어 희릉 참봉(禧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에 전심, 1597년 왕자 사부(王子師傅)가 되고 이어 형조 좌랑(刑曹佐郞)·의성 현령(義城縣令)을 지냈다.
2011.08.16 -
화곡공파 소개
이경억 신도비 1620(광해군 12)∼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이(錫而), 호는 화곡(華谷). 서울출생. 아버지는 판서 시발(時發)이며, 어머니는 승지 신응거(申應거 )의 딸이다. 7세에 아버지가 죽고 편모슬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재지가 출중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수재였다. 1644년(인조 22) 25세의 젊은 나이로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예조와 병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세자시강원사서가 되었다. 1651년(효종 2) 귀인 조씨(貴人趙氏)와 김자점(金自點)의 역모사건에 관련되어 파직된 대사헌 조석윤(趙錫胤)을 구하려고 간하다가 효종의 노여움을 사서 경성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어 돌아왔다. 1653년 순안어사(巡按御史)가 되어 영남지방의 민정을..
2011.08.16